K-라면을 필두로 한 한국의 맛이 전 세계 소비자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진 입소문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기업의 체급을 완전히 바꿔놓는 중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수 업종으로 분류되며 저출산과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던 시장의 우려는 철저히 빗나갔다. 이제 국내 식품업계는 괄목할 만한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주당 100만 원 돌파를 목전에 두는가 하면, 글로벌 최정상 아티스트와 손잡고 아예 기획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를 선보이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단일 품목의 기적, ‘황제주’ 등극 노리는 삼양식품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선 곳은 삼양식품이다. 지난 17일 기준 삼양식품의 주가는 93만 6000원에 장을 마감하며 1주당 100만 원이 넘는 이른바 ‘황제주’ 자리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1년 전인 작년 4월 17일 주가가 26만 5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몸값이 무려 3.6배나 폭등한 셈이다.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보다 주당 가격이 높은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105만 9000원) 단 한 곳뿐이다. 시가총액 역시 지난 16일 처음으로 7조 원을 돌파해 코스피 59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러한 기록적인 주가 우상향의 이면에는 제조업이라고는 믿기 힘든 압도적인 실적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삼양식품은 매출 1조 7280억 원, 영업이익 3446억 원을 달성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19.9%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이다. 식품 업계 1위는 물론이고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을 제외하면 제조업군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이로운 수치다. 실적을 견인한 일등 공신은 단연 주력 제품인 ‘불닭볶음면’을 앞세운 해외 수출이다. 공장에서 라면 10개를 생산하면 그중 7개 이상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쏘아 올린 공, 멈추지 않는 글로벌 질주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이며 한때 시장점유율 70%를 호령했던 삼양식품에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불닭볶음면은 2012년 출시되어 올해로 13년 차를 맞았다. 하지만 그 열기는 식기는커녕 갈수록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글로벌 흥행의 기폭제는 소셜미디어였다. 2014년 58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영국남자’가 런던 현지인들의 불닭볶음면 시식 반응을 영상으로 올린 것이 누적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기며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을 비롯해 미국 유명 래퍼 카디비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제품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전 세계적인 먹기 챌린지가 들불처럼 번졌다.
그 결과 작년 삼양식품의 라면 판매량은 18억 개를 기록했다. 2022년 13억 개, 2023년 15억 개에 이어 폭발적인 증가세다. 매출 규모 역시 2016년 대비 4.8배나 뛰었으며, 지난해 전체 매출의 77%인 1조 3359억 원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글로벌 매출 중에서도 소비 수준이 높은 미국과 유럽의 비중이 각각 27%, 18%에 달한다. 현재 삼양식품은 공장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음에도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다. 생산된 제품은 창고를 거칠 새도 없이 즉시 부산항으로 이동해 전 세계 90여 개국으로 실어 나가고 있다.
공급 부족 해결 위한 증설과 지수 편입 호재
당장의 공급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삼양식품은 생산 라인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장 오는 6월 밀양 2공장을 완공해 수출 물량에 숨통을 트일 예정이다. 나아가 전체 해외 매출의 29%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인 중국을 겨냥해 2027년까지 현지에 첫 해외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최근 불거진 미국발 관세 전쟁 우려 속에서도 삼양식품 내부에서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층과 대체 불가한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위기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정기 변경에서 삼양식품의 한국 지수 편입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 수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추종하는 이 지수에 편입될 경우 막대한 규모의 글로벌 패시브 자금이 유입될 수 있어 추가적인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방탄소년단이 직접 기획한 맛, 팔도와 hy의 새로운 도전
삼양식품이 글로벌 팬덤의 자발적인 입소문을 타고 수출 신화를 썼다면, 팔도와 hy(옛 한국야쿠르트)는 아예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스타 방탄소년단과 손잡고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한 신규 브랜드 ‘아리(ARIH)’를 론칭하며 K-푸드 열풍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3일 공개된 아리는 순우리말 ‘아리땁다’와 조화(Harmony), 행복(Happiness), 건강(Health)의 영문 앞 글자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방탄소년단이 단순한 광고 모델을 넘어 브랜드명부터 맛의 방향성, 패키지 디자인 등 핵심 콘셉트 결정에 깊숙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소셜미디어나 방송을 통해 선보인 들기름 막국수나 라면 레시피가 전 세계 팬들 사이에서 거대한 유행을 만들어냈던 전례를 고려하면, 이들의 직접적인 손길이 닿은 아리의 글로벌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와 해외 선출시 전략
제품 라인업 역시 철저히 외국인들의 식습관과 선호도를 분석한 결과물로 채워졌다. 컵라면과 용기면 각 7종씩 총 14종으로 구성된 ‘모던 누들’은 뜨거운 국물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소비자를 배려해 전 제품을 볶음면 형태로 개발했다. 서구권 소비자들이 젓가락 대신 포크를 주로 사용하는 점에 착안해 면발의 길이도 기존 라면보다 훨씬 짧게 조절하는 세심함을 더했다. 여기에 포스트바이오틱스 에너지 음료 7종과 듀얼 바이오틱스 소다 7종을 더해 라인업을 완성했다. 생산과 판매의 경우 면류와 에너지 음료는 팔도가, 소다류는 hy가 나누어 맡는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글로벌 타깃 브랜드답게 판매 전략도 파격적이다. 국내 시장을 거치지 않고 미국 시장에서 먼저 첫선을 보인다. 이달 24일부터 미국 전역의 월마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아리 제품의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한국 시장에는 유통 채널과의 협의를 거쳐 5월 말에나 역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팔도와 hy 측은 방탄소년단과 공감대를 형성한 철학을 바탕으로 K-푸드가 제안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우연한 유행을 넘어 기업의 치밀한 기획력과 결합된 K-푸드의 진화가 세계 무대에서 또 어떤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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